[비가 걷히고, 물안개 속에서 춤추다 – 나홀로 떠난 낭만 가득 나이아가라 3일 여행기]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내 안의 소리가 들리지 않던 어느 평범한 날. 나는 조용히 떠나고 싶었다. 누군가 이끌고 계획된 여행이 아닌, 오직 나의 심장과 시간으로 채워지는 길.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싣고 2시간 30분을 날아, 내가 향한 곳은 ‘대자연의 심장’이라 불리는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였다.

 부슬비가 내리던 첫날, 나이아가라는 깊고 낮게 울고 있는 듯했다. 잿빛 하늘 아래로 쏟아지는 물줄기, 천지가 진동하듯 퍼지는 굉음,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물안개. 나는 우비를 껴입고 천천히 캐나다 쪽 폭포 전망대까지 걸었다. 머리는 젖고, 신발은 질척였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폭포인지 구분이 불분명했다.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평온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자 나이아가라는 완전히 달라졌다. 햇살을 머금은 물안개가 공중을 수놓고, 그 위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걸렸다. 캐나다 쪽에서 바라본 호스슈 폭포(Horseshoe Falls)는 이름 그대로 말굽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안엔 무시무시한 힘이 숨어 있었다. 분당 1억 6천만 리터에 달하는 물이 쏟아지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당할 정도였다. 반면, 미국 쪽의 아메리칸 폭포(American Falls)는 보다 단정하고 직선적이었다. 마치 깎아놓은 바위 위에서 울컥 솟구치는 감정처럼, 정제된 격정을 품고 있었다. 이 두 폭포는 물리적으로는 같은 물줄기를 품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호스슈가 우아한 무용수라면, 아메리칸 폭포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전사 같았다.

 이 웅장한 폭포를 온 몸으로 느끼고 싶어 혼블로워 크루즈(Hornblower Cruise)에 빨간 우비를 입고 올랐다. 폭포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커졌고, 물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마침내 폭포 한가운데에 도달했을 때, 세상은 흰 물줄기와 물안개로 가득 찼고, 나는 자연의 품 안에 완전히 파묻혔다. 귀마개도 통하지 않을 만큼의 굉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웃었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내 온몸으로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아가라는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은 인간의 도전과 용기, 때로는 광기의 무대이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애니 테일러(Annie Edson Taylor)이다. 1901년, 그녀는 나무통 하나에 몸을 싣고 호스슈 폭포에서 떨어진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63세. 은퇴 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녀는 잠시 유명해졌지만, 곧 세상은 그녀를 잊었고, 말년은 쓸쓸하고 가난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넘기 위해 줄을 타거나 날개 달린 기구를 타거나 심지어 수상스키로 도전했다. 1859년, 찰스 블론딘(Charles Blondin)은 장대를 들고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외줄로 건넜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그의 발끝을 바라보았다. 그 후로도 수많은 이들이 그의 뒤를 따랐지만, 모두가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다. 나이아가라는 도전자에게는 무대였지만, 그 일부에게는 무덤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폭포의 위대한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었다. 그 중심엔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가 있다. 맞다. 그 유명한 일론 머스크의 회사 테슬라. 그 이름의 주인공이 니콜라 테슬라이다. 그는 수력 발전소(Hydroelectric Power Station)를 통해 처음으로 교류 전력을 상용화하며 인류의 밤을 밝혔고, 전 세계 에너지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캐나다 쪽에 남아 있는 발전소 유적지와 그의 동상 앞에 서니, 그가 이곳에서 느꼈던 꿈과 열정이 전해지는 듯했다.

 발전소 아래에는 폭포 뒤편의 터널(Behind the Falls)이라는 코스가 있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위 안쪽을 뚫은 긴 통로 끝을 지나 세상을 등지고 폭포를 마주했다. 그 웅장한 물기둥이 눈앞에서 쏟아지는 광경은 말 그대로 ‘지구 깊숙한 아래’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몸을 울리는 진동, 공기 속을 떠도는 물방울, 그리고 하얗게 뒤덮인 시야. 눈물이 났다. 감동 때문인지, 물안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셋째 날에는 좀 더 낮고 조용한 곳인 화이트 워터 워크(White Water Walk)로 이동했다. 급류가 굽이치는 강가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물살이 마치 살아 있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바위를 핥았다. 무시무시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다. 나이아가라의 격정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장소였다.

 그리고 나는 조용한 와이너리를 찾았다. 와이너리 사이로 불어오는 봄바람,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와인 바. 이곳에서 마신 아이스와인(Icewine)은 차가운 밤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져, 달콤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이아가라의 격렬한 폭포와 대비되는,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마무리였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 창밖으로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슬프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안다. 비가 내린 뒤엔 반드시 무지개가 뜬다는 걸.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고, 무서웠지만 아름다웠다. 나이아가라는 내게 자연의 위대함뿐 아니라 인간의 용기, 과학의 발전,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를 선물해 주었다.

 그 모든 물소리와 바람, 눈물, 햇살, 와인 한 모금까지… 지금도 가끔 눈을 감으면 선명히 떠오른다. 나이아가라는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나를 불러줄 것이다. 오직 나를 찾기 위해.